가슴으로 맛보는 와인

2021.05.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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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맛보는 와인


와인 애호가들은 처음에 여러 가지 와인의 맛을 보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와인은 이 스타일이야.”하면서 어느 회사의 몇 년도 산 와인이 내 입맛에 꼭 맞는다고 말하게 된다. 와인 애호가들이 좋아한다는 와인들은 대부분 조화를 이룬 와인들이었다. 물론 개인의 맛보는 능력과 취향에 따라서 부드럽다고 하는 맛이 조금씩은 다르다. 그러나 대체로는 조화가 잘 된 와인을 말하고 있다. 조화된 맛을 즐기는 단계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맛에만 푹 빠져서 한 동안을 그런 와인에 탐닉하고 지낸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다 보면 조화되지 못한 와인 중에서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되는 와인들이 제법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와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와인의 맛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된다. 각각의 와인 맛이 다른 점을 인정하고 나라 별로, 지역 별로, 회사 별로, 품종 별로, 연도 별로, 등급 별로 다른 점을 알게 된다.

와인 맛이 각각 다르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또 와인은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화이트 와인과 레드 와인의 맛이 다르고, 고가의 와인과 중저가의 와인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탱크 숙성과 오크 숙성의 맛이 다르다는 것을, 오래된 와인과 어린 와인을, 빈티지 별로 맛이 다른 것을, 정상 와인과 산화되거나 오염된 와인의 맛이 다른 것을 등을 알게 된다. 맛이 조화된 좋은 와인이 아니더라도 특징이 있는 와인이면 좋다는 생각이 들게 되고 와인은 맛보고, 즐기기 위한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에서 더 발전하여서, 와인 그 자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어린 와인은 신맛과 쓴맛이 강하므로 좋고 잘 숙성된 와인은 상당히 강하면서도 조화되어 힘이 있고 오래 숙성된 와인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맛이 있다. 어느 와인이 더 좋으냐를 떠나서 각각 맛과 특징이 다른 것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오크 통에 숙성한 그랑 크뤼 클라세에 속하는 샤토 와인은 잘 익은 포도가 가지는 풍부한 향과 오크 향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인 향이 오묘하다. 탱크 숙성한 고급 와인에는 인공적인 향인 오크 향이 없고 순수하게 포도에서만 오는 또 충분히 농익은 과일 향이 풍만하고, 숙성을 오래하지 않은 와인에서는 신선한 과일 향이 두드러진다. 기온이 너무 높기만 한 지역에서는 포도가 다 익을 때까지 두지 못하고 덜 익은 상태에서 어쩔 수없이 수확하여 칼라도 옅고 신맛도 떨어지는 와인이 생산되는데 이런 와인은 힘이 좀 약하기는 하나 빨리 숙성되고 저렴하니 매일 큰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어서 좋다. 늘 비싸고 좋은 와인을 마시려면 경제력이 따라주어야 하지만 서민들에게는 이런 와인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보르도의 포도들은 대서양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기후와 자갈 모래 등의 토질에서 재배된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말벡과 쁘띠 베르도 등의 포도들을 블랜딩하여 칼라가 진하고, 여러 가지 과일 향이 강하며, 타닌 맛이 많은 와인이 되는데 이것을 다시 오크통에 숙성시켜서 쓴맛을 더 많게 한 와인이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와인들보다 아로마와 부케가 강하면서 쓴맛도 많아서 바디감이 많은 와인이다.

부르고뉴에서는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서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을 지나게 되고, 석회와 점토질이 많은 토질에서 잘 자라는 레드 품종을 재배하는데 거의 피노 누아 단일 품종을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칼라가 좀 옅으며 신맛이 많고 쓴맛이 좀 적은 와인이 된다. 단일 품종을 사용하므로 피노 누아만의 과일 향이지만 오크통에서 숙성하여 상당히 복합적인 향이 있고 쓴맛과 신맛이 많은 강한 와인이 된다. 보르도 와인이 여러 가지 포도를 블랜딩하고 오크 숙성도 오래해서 화장을 많이 하였다고 말한다면 부르고뉴 와인은 한 가지 포도만을 사용하고 신맛이 많은 올 곧고 강직한 와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프랑스만 하더라도 이 외에도 많은 와인 생산지역이 있어서 각 지역 별로, 동네 별로, 품종 별로, 회사 별로, 연도 별로 수많은 와인이 생산되고 있다. 어디 프랑스뿐이겠는가? 이태리,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남아공 등의 여러 나라에서 지역별로, 동네 별로, 회사 별로, 품종 별로, 연도 별로 수많은 와인이 생산되고 있는데 이 모든 와인이 다 맛이 다르고 특징이 다르다.

고급 와인은 그대로 좋고 저가 와인은 저가 와인대로 가치가 있다. 와인은 마실 때마다 다른 맛이고 새로운 경험이다. 굳이 비싼 와인이 아니라도 특징이 다른 와인을 만나는 것이 나를 기쁘게 한다. 최고급 호텔에서 비싼 스테이크도 좋다. 동시에 우리나라 제주도, 남해안, 서해안 동해안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정갈하게 준비된 해산물 요리도 마찬가지로 좋다. 내륙 지방에서도 산나물과 육류 등으로 만든 요리와 김치, 된장도 기가 막히게 맛이 있는 요리이다.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특산 요리들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좋으냐 하고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열을 가리는 것보다 각각 그 특징이 다르다 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백인, 흑인, 동양인 중에서 어느 인종이 우월하냐고 하는 것은 잘 못 말하는 것이다. 도시의 좋은 환경에서 잘 성장한 어린이들만 귀엽고, 시골에서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뛰노는 아이들이나 북한의 꽃제비 혹은 아프리카의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남루한 옷을 입은 어린이들을 혐오스럽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들도 깨끗하게 씻고 옷을 제대로 입히면 귀여운 아이들이고, 그 속 사람은 얼마나 때 묻지 아니한 순수한 영혼들인가?

필자는 와인도 비싸건 싸건, 고급이건 저급이건, 오래된 와인이건 어린 와인이건, 프랑스 와인이건 칠레 와인이건, 그 자체를 하나의 와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외국의 알지 못하는 곳에서 재배된 포도의 뿌리가 땅속에서 뽑아 올린 물과 공기 중의 탄산가스를 가지고 포도 잎의 엽록소의 도움을 받아 햇빛의 태양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변환하여 포도당과 과당을 만들어서 포도 알에 담았다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와인으로 승화하여 멀리 나에게까지 와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은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역사적인 사실인가. 필자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마신다. 와인의 맛을 볼 줄 알게 되어서도 감사하고, 와인 맛을 볼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감사하고, 저렴한 와인이라도 마실 수 있는 형편이 되어서 감사하고, 무엇보다도 멀리서 온 이 와인이 내 앞에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것이 몇 천원 가격이든 몇 만원 가격의 와인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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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마주앙 공장장 출신 / 소믈리에 김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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