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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백악관 인근에서 열린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6월 22일(현지시간) 라파예트 광장에 세워진 앤드루 잭슨 전 대통령의 기마상에 쇠사슬과 밧줄을 걸며 철거를 시도하고 있다. 시위대의 동상 철거 시도는 경찰에 의해 제지됐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미국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뒷목이 눌려 숨진 사건의 파장이 ‘역사전쟁’으로 번지고 있다.

플로이드가 숨진 지난 5월 말부터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시위가 경찰 개혁 요구에 이어 동상 철거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흑인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며 남북전쟁을 일으켰던 남부연합 정치인과 장군, 병사들을 기념하는 동상들이 주요 타깃이지만,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건국의 아버지들 그리고 역대 대통령을 기념하는 동상을 철거하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동상 철거 운동이 광범위하게 펼쳐지면서 이에 대한 반발도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거의 매일 동상 철거를 둘러싼 뉴스가 보도되고 있다.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는 원형 기둥 모양의 기단 위에 세워진 약 19m 높이의 남부연합 기념비가 시위대에 의해 철거됐고,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도 시위대가 한 고등학교에 있던 남부연합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을 철거했다.

텍사스주 휴스턴,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와 알렉산드리아에서도 남부연합 관련 동상과 기념비들이 철거됐다.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5월 25일 플로이드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관의 무릎 아래에서 고통스럽게 숨지는 충격적인 동영상이 소셜미디어 올라온 이후 미국 전역에서 200여 건의 동상 또는 기념비가 철거되거나 철거 계획이 발표됐다.


미 전역으로 번진 동상 철거 운동

지역별로는 흑인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며 미합중국에서 탈퇴했던 남부 11개 주에서 고르게 동상과 기념비 철거가 진행됐다.

시위대에 의해 거칠게 동상이 끌어내려진 경우도 있지만, 지자체가 논의를 거쳐 철거하거나 철거를 예고한 경우도 많다.

특히 남부연합이 수도로 선포한 리치먼드가 자리 잡은 곳이자 남부연합군을 이끌었던 리 장군이 태어난 버지니아주에서도 동상과 기념비 철거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리치먼드 중심부에 있는 리 장군의 거대한 기마상은 한때 리치먼드의 ‘명물’로 대접받았지만, 이제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다.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위대가 기마상을 받치고 있는 15m 높이의 기단에 페인트로 인종 차별에 반대하는 구호를 잔뜩 써놓았다.

민주당 소속인 랠프 노덤 버지니아 주지사는 6월 초 이 동상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1890년 이 동상이 세워질 당시 부지를 제공한 사람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법원에 철거 금지 명령을 요청했고,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일단 제동이 걸린 상태다.

미국 남북전쟁은 1861년 4월 흑인 노예제 존치를 주장하는 남부의 주들이 미합중국에서 탈퇴해 남부연합을 결성한 다음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항의 섬터 요새를 포격하면서 시작됐다.

전쟁에서 사망한 군인만 62만 명이며 민간인 사상자도 무수히 발생했다.

남북전쟁은 1865년 4월 버지니아주 애퍼매턱스 코트하우스에서 남부연합이 항복문서에 서명함으로써 종결됐다.

패배한 군인들은 무장해제를 당한 채 각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미합중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던 남부연합, 그리고 남부연합의 주요 정치인과 군인들을 기념하는 동상과 기념비가 미국 전역에 산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남북전쟁으로 흑인 노예제는 폐지됐지만, 흑인을 여전히 열등한 존재로 여기며 섞이기를 거부한 백인들의 심리가 자리 잡고 있다.

전쟁에 패했지만 흑인을 동등한 국민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백인들은 그들이 추구했던 ‘대의’를 상징했던 남부연합, 그리고 남부연합의 주요 정치인과 장군들을 ‘소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쟁의 참화가 희미해진 이후 북부연방이 화합 차원에서 남부의 주요 인사들의 명예를 존중해준 측면도 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1900~1920년 남부연합 관련 상징물이 집중적으로 건립됐다.

미국의 인종 차별 반대 시위대가 6월 23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남부연합 총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 기마상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리치먼드| AP 연합뉴스


남부연합 상징물 왜 많나

제도적으로는 흑인 노예제를 대체해 인종 분리정책을 합법화한 ‘짐 크로법’이 영향을 미쳤다.

남부연합에 속했던 주들이 1876년부터 백인과 흑인의 분리를 합법화하기 위해 채택한 주법을 통칭하는 짐 크로법은 흑인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신장한 1964년 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이 제정될 때까지도 존속됐다.

비정부단체 ‘이퀄 저스티스 이니셔티브’의 브라이언 스티븐슨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렇게 말했다.

“인종적 평등에 대한 저항, 그리고 흑인과 동등한 대우에 대한 거부를 기념하는 도상(圖像·종교나 신화적 주제를 표현한 미술 작품에 나타난 인물 또는 형상)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사용한 문화적 서사의 중요한 부분이며, 특히 미합중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자들을 영웅으로 둔갑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말은 인종 차별에 항의하는 이들이 이런 상징물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는 이유까지 설명해준다.

사태는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콜럼버스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같이 남부연합과 상관이 없는 인물의 동상들까지 공격을 받으면서다.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워싱턴은 흑인 노예를 다수 소유했다는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

뉴욕 자연사박물관 앞에 있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기마상의 경우 맨발의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이 양옆에서 시중을 드는 모양새로 표현돼 있다는 이유로 시 당국으로부터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백악관 인근 라파예트 공원의 앤드루 잭슨 대통령 기마상도 흑인 노예를 소유했고, 아프리카 원주민을 학살했다는 전력 때문에 시위대 공격을 받았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은 그들의 선조인 콜럼버스 동상 공격에 반발하며 동상 지키기에 나섰다.

남부연합 동상 철거에 동의하는 이들도 범위가 확장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존경한다고 꼽은 잭슨 대통령 동상까지 공격을 받자 ‘반달리즘’이라고 공격하며 강력한 처벌을 예고하고 나섰다.

일부에게 불편한 역사도 역사이므로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다.

동상 철거를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한 인물의 긴 생애에서 일부 마음에 들지 않는 경력만 부각해 공격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펼친다.

이에 대해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이들은 “차별과 배제의 상징물은 박물관에 있으면 모를까 거리와 공원에서 기념되고 추앙돼선 안 된다”고 반박한다.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다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미국이 이처럼 역사전쟁을 벌이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누군가에겐 영광과 향수의 대상이 다른 누군가에겐 아픔과 상처를 안겨준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갈등이 첨예해질 때마다 역사전쟁이 치열하고도 길게 펼쳐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4&oid=032&aid=0003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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