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의 보르도 샤토 방문기 (2)

2021.04.12 최고관리자
프랑스 0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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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없는 사람도 마태 복음에 나오는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라는 구절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종교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작고 소소한 일이라도 하나님께 구하고 바라라’는 뜻이며, 교훈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라!’이쯤으로 해석이 되는 것 같다. 생각은 누구라도 한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현실 앞에 앉혀 놓고 실행을 하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춤한다.


누구에게나 다음과 같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잠자기 전에 생각을 골똘히 하면서 “맞네, 이렇게 하면 되네! 이런 현상이 닥치면, 이렇게 해결하면 깔끔하게 끝나겠네!”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다. 잠이 들기 전에 나름대로는 모든 현실을 조정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마치 제갈공명처럼 그리고 징기스칸 같은 용맹한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든다. 

하지만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눈을 뜨면 그 전날 총명하고 용감했던 계획은 눈 뜬 현실 앞에서 마치 연탄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처럼 오그라들기만 한다. 하긴 뭐 이래야 "못 부친 편지"같은 노래도 나오곤 하는 거겠지만……

나에게는 현대 그룹의 명예 회장이셨던 고 정주영 회장님이 하신 말씀 중에 “당신 해봤어?”라는 문구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내 기준으로는 마태복음에 쓰여져 있는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의 문장을 다섯 글자로 요약해놓은 것 같다.

메독 지역의 단풍 든 포도 나무 낙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마고(Margaux) 지역에 갔다. 샤토 마고를 비롯한 21개의 그랑 크뤼 샤토가 얽히고 설켜있는 마고 지역을 찍어야 순서일 것 같아서 아침부터 서둘러서 마고로 떠날 봇짐을 꾸렸다. 평소에 눈 여겨 봐 두었던 샤토들! 나는 늦가을에 담쟁이 나뭇잎 색깔이 예쁘게 변할 것 같은 샤또들을 열심히 돌아 다녔다.

그런데 내 눈에 띈 샤토 로잔 세글라(Château Rauzan-Ségla)! 잠깐만! 샤토 로잔 세글라는 내가 지금까지 방문한 적이 없는데……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니고, 이상하게도 일정이 계속 안 맞는 것이었다. 
그리고 방문 예약 전화를 해도 잘 받지를 않았다. 일부러 나를 거절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흔한 표현으로 핀트가 안 맞아서 계속 삑 사리가 났다. ‘핀트불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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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동차의 본네트 방향을 바로 샤토 로잔 세글라로 들이댔다. 샤토 안에서 나무와 단풍이 든 담쟁이 잎이 예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사무실이라고 적혀있는 곳으로 발 앞굼치 방향을 틀었다. 
나와 통화를 했던 샤토 직원의 이름을 기억하니까 사무실에 들어가서 ‘아무개’ 찾는다고 해야지 하고 굳게 마음 먹고는 사무실 문을 열면서 신발 바닥에 묻은 흙을 매트에 싹싹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는 조폭 두목처럼 여유 있게 턱을 들면서 “아무개를 찾는데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10명 정도의 파란 눈 그룹이 깔끔한 정장 차림으로 기다란 테이블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는 일시적으로 20개의 파란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숨이 콱 막히면서, 바로 낮은 음자리표 톤으로 “죄~쏭 합~~~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닫지도 않았던 문에 엉덩이를 내밀면서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moon walk)’ 수준의 뒷걸음으로 얼른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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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온 나는 ‘내가 온 걸 확인시켰으니까 회의 중간에라도 누군가 나와서 무슨 일인지 묻겠지.’하는 기대와 함께 멀건이 문을 응시하면서 기다렸다.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달리 5분을 기다려도 사무실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회의하는데 다시 들어가서 “아무개 찾는데요.”라고 말을 할 용맹스러움이 나에게는 없었다. 

“에이 다음에 다시 와야 하나”하고 망설이는 순간, 오른쪽에서 어떤 아가씨 한 명이 서류 박스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영어로 “아마도 제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 말투가 왠지 나와 몇 번 전화 통화를 한 그 여직원 같아서 “혹시 아무개 아닌가요?”라고 묻자, 그 여직원은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저의 이름을 아세요?”라고 나에게 되묻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내가 여러 차례 전화를 했던 정민영입니다.”라고 말하자, 그 직원은 “아~~” 라고 하면서 “네 네 네 네 기억하죠.”라며 멋쩍어 했다.

우리는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면서 지나간 과거사(?)를 깔끔하게 청산을 하고는 다시 샤토 방문 일정을 잡으려고 했다. 직원은 사무실이라고 쓰여져 있는 곳이 아닌 그 옆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사무실은 저쪽이 아닌가요? 저 방에 사람들이 많이 있던데요.” 라고 묻자 “오늘 파리에 있는 샤넬(Chanel) 본사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회의를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많겠지만 메독에 자리잡고 있는 샤토 로잔 세글라와 생테밀리옹에 뿌리내린 샤토 카농(Château Canon)의 등기부 등본을 떼 보면 땅문서, 집문서 주인이 샤넬이다.

다음날 아침 9시 30분에 샤토 방문 예약이 잡힌 덕분(?)에, 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처럼 더욱 일찍 일어나서 샤토로 향했다. 

시간에 맞춰서 샤토의 투어는 진행이 됐고, 샤토 내에서는 1차 알코올 발효가 끝난 포도들을 스테인레스 탱크에서 프레스 머신으로 옮기는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덕분에 쉽게 볼 수 없는 귀한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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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테이스팅 한 와인은 2011년 빈티지였다. 와인을 테이스팅하기도 전에 샤넬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기본 50%는 와인 향의 화려함과 세세한 스트럭쳐가 보장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샤토 직원이 따라준 와인 잔에 코를 대고 향을 맡을 필요를 못느꼈다. 와인을 잔에 따라주는 순간부터 터질것 같은 자두 쥬스에 붉은 장미를 띄운 향이 이미 와인 잔에서 넘치고 있었다.  맛은 개인적으로 느끼는 게 정말 다르겠지만, 내가 느낀 2011년 빈티지는 독신주의자다. 와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와인이라고나 할까? 어떤 마리아쥬의 함수 관계에도 손 저어 정중히 거절할 수 있는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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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쓰여져 있는 “두드려라, 그러면 문이 열릴 것이다.” 혹은 왕 회장님이 말씀하신  “당신 해봤어?”라는 말은 나에게 힘이 되는 주옥같은 명언이다. 그렇지만, 나의 인생을 위의 명언에 빗대어 이야기한다면 다음과 같이 바꾸고 싶다. 

“문 먼저 열어라, 그리고 두드려라!” 또는 “남들 안 해서 하고 있어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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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정민영(Min Young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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