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기원

2021.05.03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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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기원


현대인들이 즐기고 있는 와인은 포도 자체의 산화, 발효 및 숙성 단계를 거친 제품이다. 와인은 포도의 품종 및 그 발효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포도가 자라는 지역의 떼루아와 포도 재배자의 정성 및 생산자의 독특한 노하우가 결합한 최종 산물이다. 이러한 와인이 과연 어디서 기원했을까라는 문제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와인의 기원은 필연적으로 포도의 기원과도 관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포도는 와인 양조용으로 특별히 재배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서 사계절이 존재하는 곳에서 어느 정도 결실을 맺을 만큼 성장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가 성장하는 지역에서는 필연적으로 와인의 생산 혹은 와인의 자연적 생성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와인은 아니지만 와인과 비슷한 숙성된 포도 과즙은 빙하기 이전의 홍적세(Pleistocene) 단계에도 생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인류는 지극히 초보적인 도구만을 사용하고, 사냥보다는 채집에 의존하던 시기였으며, 먹을 수 있는 각종 식물자원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이용되고는 했다. 인류의 진화 상 소위 ‘구석기 시대(Paleolithic period)’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초기 인류가 지금과 같은 인간적인 특징을 갖추었기 보다는 간신히 짐승을 벗어난 수준에서 직립 보행을 하며, 자유로워진 두 팔을 이용해서 보다 높은 곳에 있는 각종 자연 작물을 채집하던 시기이다. 이러한 초기 인류는 약 180만년 전 정도에 열대 아프리카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포도라는 온대성 작물을 아마도 처음으로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위치는 지금의 코카서스 지역인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현재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아 일대일 가능성이 높다. 이 일대에서 발견된 호모 지오르지쿠스 (H. georgicus) 화석의 경우 간단한 석기를 사용하였으며, 사냥보다는 주로 채집에 의존한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코카서스 지방에 최초로 초기 인류가 정착한 연대는 대략 150만년 전이다.

초기 인류가 포도를 접하고 섭취하는데 있어서 그 선호도는 다른 작물에 비해 월등했을 것이다. 사냥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이전 단계에서 초기 인류의 입지는 안정적인 수자원의 공급이 수월한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 코카서스 지역 및 인근 아나톨리아 일대는 비교적 서늘하면서도 다양한 야생 작물이 성장하던 지역이다. 초기 인류는 야생 포도를 직접 섭취하였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유는 건기 동안 물을 섭취하기 곤란한 경우 과즙 함유량이 많은 포도가 일시적인 갈증 해소에 충분한 수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량의 당분을 함유하고 있는 포도는 초기 인류의 진화에 필수적인 포도당을 제공하면서 집중적으로 섭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야생 포도는 이렇게 반복적으로 초기 인류에게 섭취되면서 보다 더 굵은 알과 더 높은 당분을 포함하는 방식으로 자체 진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포도가 초기 인류에게 이용되면서, 포도 껍질에 자연적으로 서식하는 효모(yeast)는 높아진 당분을 발효시키는 촉매로 작용한다. 특히 포도나무가 성장하면서 높은 곳에 위치하는 포도 열매 송이는 자연적 발효를 어느 정도 거친 상태에서 땅에 떨어져 보다 시큼하고 알코올 성분을 함유한 원시 발효숙성 포도로 섭취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목격한 초기 인류는 알코올이 가져다 주는 묘한 환각 및 스트레스 해소 작용을 체험하면서 점차 발효 포도 과즙에 대한 탐닉을 가지게 된다.

구석기 시대가 지나고 빙하 시대가 끝나면서 코카서스 지역 및 인근의 아라비아 반도 북부와 페르시아 일대는 인류 최초로 농경이 발생한 지역으로 성장하게 된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및 지중해의 에게 문명 등이 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해서 원시적인 농경과 도시 형성이 전파된 결과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포도 재배 및 와인 생산은 약 8000년경에 그루지아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시기는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 불리는 이라크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서 최초로 농경이 정착하는 시점보다 앞선다. 즉 농경의 개시와 함께 가장 먼저 재배된 작물로서 포도를 들 수 있으며, 그 재배 목적은 바로 와인 생산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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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의 아레니(Areni) 마을에서 확인된 최초의 와이너리 유적 장면 (사진: National Geographic 제공)/ 


현재까지 고고학적으로 확인된 가장 오래된 와이너리는 아르메니아에서 확인되고 있으며, 그 연대는 대략 BC 4000년경이다. 당시의 와이너리는 가장 널리 알려진 와인 생산법과 마찬가지로 맨발로 포도를 으깨던 방식이다. 주변에서는 와인을 숙성시키고 김장독처럼 땅 속에 묻어 둔 흔적이 그대로 발견되었다. 흑해와 카스피해 일대에서 최초로 생산되던 와인은 이슬람 제국에 의해 본격적으로 금주령이 확립되기 까지 이 일대의 가장 대표적인 와인 산지로 성장했다. AD 800년경 페르시아 지역의 시라즈(Shiraz)라는 도시는 당시 세계 최고급 와인을 생산하던 곳으로, 시라 혹은 시라즈라고 불리는 포도 품종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농경의 발생보다 훨씬 더 오래된 기원을 가지는 와인의 역사는 아마도 인류가 두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섭취한 최초의 천연 가공 식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수렵을 시작하면서 고기 맛을 터득하게 된 초기 인류는 육식과 함께 자연산 와인을 마셨을 가능성이 높다. 농경이 시작되면서 동물의 사육이 진행되면 각종 유제품이 저장 식품으로 등장하게 된다. 현재 널리 회자되는 와인과 스테이크, 와인과 치즈의 마리아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전에 우리들의 입맛 유전자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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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유용욱 (Yongwook Yoo)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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